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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 - 2021년 우천상 수상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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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천복지재단 댓글 0건 조회 1,143회 작성일 21-10-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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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단법인우천복지재단은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미래 사회복지를 이끌어갈 인재를 선정하여 매년 세 분께 우천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수상자이신 은평외국인노동자센터 서신 과장님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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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천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이주노동자를 위해 12년째 일해오고 계시는데 수상이 선생님께 작은 격려가 되었다면 좋겠어요.

    네, 우천상 후보로 전국에서 많은 분이 추천되었을 텐데 그 영광이 저에게 돌아왔다는 것에 너무 놀랐어요. 제게 큰 격려와 응원이 되었고, 무엇보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이주민 복지라는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 동료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상 소식을 듣고 부장님, 사장님께서도 무척 축하해주셨답니다.

 

Q. 사장님이요?

    아, (웃음) 저희가 사업장 노동자분들이랑 대화를 하다 보니까 그분들에게는 회사라는 단어가 익숙해요. 관장님, 센터장님은 생소하고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센터장님이 우리 사장님이라고 소개를 했더니 이해를 쉽게 하시더라고요. 복지관은 회사고요. 이제는 관장님도 스스로 사장님이라고 소개하세요.

 

Q. , 듣고 보니 참여하시는 이주노동자분들의 눈높이에 딱 맞춘 호칭이네요. 재미있습니다. 처음 드리는 질문은 사회복지사 서신을 만든 장면에 대해서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언제 어디일까요?

    음...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아요. 제가 시흥에 있는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일할 때인데요. 퇴근하려는 길에 미얀마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친구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통역을 해주다 자신도 경찰서로 잡혀 왔다는 거에요. 그 친구는 미등록 체류 중이었고 그 당시에는 피해자여도 미등록 체류 중임을 경찰이 알았을 때는 단속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서로 찾아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 거에요. 그때 선생님 어디세요?”라며 전화가 왔는데 저와 가까이 있었던 거예요. 그 순간 제가 그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제가 본 모습은 늘 가장 깔끔하고 좋은 옷을 입었을 때였기에 기름때 낀 작업복을 입은 그 친구를 알아보지 못한 거였어요.

    그날이 제가 이 일을 정말 다시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날입니다. 그 이후로 공단에 있는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인들은 견디지 못하는, 소위 3D업종이라 불리는 뿌리산업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분들의 삶의 자리를 존경하게 되었고 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결국 친구를 위해 통역을 해주었던 미얀마 노동자는 보호소로 가게 되었고 자신의 집 열쇠를 주며 짐 정리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열고 들어간 집에는 멋진 구두며 동대문시장에서 조금씩 사 모은 옷들이 있었다. 멋쟁이였던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차근차근 준비했던 흔적을 마주하고 짐을 싸던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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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한 가을나들이]


Q. 사실 코로나로 이주노동자분들이 못 오시면서 농촌은 정말로 일손을 구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말씀처럼 농업, 공업 등 1차산업 분야에서 궂은일을 모두 해주고 계신데, 우리 사회에서 이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한국 사람은 이분들을 가난한 사람, 그래서 외국까지 일하러 온 사람 이렇게 취급하는데, 아주 옛날에는 한국에서 일하고 본국에 가면 부를 축적할 수 있었어요. 바꿔말하면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아니거든요. 그냥 나라를 이동해서 일하시는 거죠. 그리고 한국에서 이주노동 정책은 자유로운 노동을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허가하는 것이고, 철저히 보완성의 원칙에 따라 수를 일정하게 통제하는 쿼터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줄어들었지만 말이죠.

 

Q. 이렇게 편견과 차별 속에서 고생하며 일하시는데 지난겨울 돌아가신 속헹씨 사례처럼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하기도 하고 임금체불 등이 여전히 많잖아요. 그런 경우에 개입하셨던 경험이 궁금합니다.

    임금체불이 정말 많은데 케이스가 다 제각각이에요. 난민 신청을 했다 거절당한 미얀마 노동자가 계셨어요.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1% 미만이거든요.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불법취업을 하셨는데 기계의 프레스에 검지손가락이 들어가서 한 마디가 뭉개지셨어요. 급한 치료를 마쳤지만 제대로 복원 수술을 받고 싶으셔서 수술비 마련을 위해 다시 일하시다가 단속되신 거죠. 그러면 미등록체류자들은 보호소라고 부르는, 사실은 구치소같은 곳에서 본국으로 송환되기를 기다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 손가락을 꼭 수술하고 싶다고 상담원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된 거예요.

    사실 열 손가락 중에 손가락 하나, 그것도 끝마디 하나 뭐 그걸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사람들과 악수할 때도, 손을 들 일이 있을 때도,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찬양을 할 때도 손가락이 부끄러워서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이 작은 손가락 한 마디가 결코 하찮은 게 아니구나, 지금 이분에게는 전부이구나 생각했어요.

 

Q. 그런데 보호소에 계신 상태면 다시 나올 수가 없지 않나요? 일종의 구금상태인데요.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을 다시 일시보호 해제하는 건 힘들어요.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일시보호해제가 필요하며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다시 들어간다는 약속의 의미로 일종의 보증금을 내고 일시보호해제를 받을 수 있죠. 그래서 그분과 관계있는 이주노동자 공동체에서 2천만 원을 해주시고 저희는 상담계획을 세워 제출했어요. 우리 센터가 개입해서 병원 진료를 받고 본국으로 귀환할 때까지 책임을 지겠다구요. 병원을 여러 군데 찾아가 상담하고 산재 신청도 하고 모금 활동도 해서 수술받고 재활치료도 했지요. 마지막에는 80% 이상 기능이 회복되어 손으로 물건을 못 집던 분이 집을 수 있게 되었어요. 1년에 걸쳐 그렇게 만나고, 12월 마지막 날 제가 공항에 가서 보내드렸어요.

 

Q. , 전해듣기만 해도 뿌듯하고 뭉클하네요. 그런데, 한편 불안하지 않으셨나요? 혹여나 손가락이 다 나으면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은 마음에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네, 저도 과장으로서 실무자랑 회의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또 안 할 수가 없는 게 이분이 정말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센터의 신뢰와 우리 실무자의 상실감은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상담할 때 계속 같이 다니고, 상담계획을 3차에 걸쳐 냈어요. 경과와 상황 변화에 따라서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치료가 완료되었을 때 본인도 기쁘게 돌아간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어요.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크고 작은 문제를 상담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특히 임금 체불 문제는 사업장과의 대화가 필수인데 중립적인 입장에서 접근해도 사업주에게 욕먹기 일쑤이다. 제일 많이 듣는 소리는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을 도와줘야지!” 흥분해서 던지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실무자들에게는 밤에 누워있을 때 오늘 상담이 자꾸 생각나면 상담하면 안 된다.’라고 늘 이야기 한다고 한다. 내가 저 사람 체불된 임금 못 받아주면 어쩌지 생각하느라 잠 못 자면 교육사업으로 바꿔주겠다고.

 

    한국 사람한테 욕먹었을 때 내가 왜 이런 소리를... 이런 상실감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그러면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요. 왜냐하면 문제 해결을 받았으니까요. 그런 상실감이 또 있어요.


Q. 목표를 잘 이루고 무사히 돌아가신다면 그것이 그분께는 가장 좋겠지요본국으로 귀환을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해 치킨조리과정을 전국 최초로 여셨다고 들었어요참여하시는 분들 반응은 어떠신가요한국하면 치맥이잖아요. 

  네팔 노동자 한 분이 본국 돌아가기 전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시다가 치킨 만드는 걸 배우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그 순간 이거 재미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그래서 치킨 튀기는 기계를 가지고 다니시며 봉사하시는 분을 강사로 모셨어요기계로 하는 방법이랑 기계 없이 큰 웍으로 하는 방법도 가르쳐드려요저희가 4년째 하고 있는데 참여하시는 분들이 엄청 좋아하세요한국 치맥이 워낙 유명하고 맛있고또 이분들이 길게는 9년 8개월, 10년 가까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본국에 가면 거기에서 뭘 해야 하나젊음을 한국에서 다 보냈으니 가면 다시 적응을 하셔야 하거든요최근에는 한국에서 창업하신 분 식당에 직접 찾아가 창업 교육도 했어요생생한 현장에서 배우니 얼마나 질문이 많으신지도움이 많이 됐다고 하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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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조리 행사장에서]
 

Q. 정말 일을 재미나게 만들어가시는 것 같아요그럼 선생님께서 일하시는 시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좋아하시는 시간은 언제일까요?

    일요일이에요일요일은 센터에 참여자들이 오는 날일요일은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가요제 첫 직장 센터장님이 신부님이셨는데 그분한테 배웠어요일요일에는 절대로 책상 앞에 엉덩이붙이고 앉아있지 말라고요밖에 나가 현관에서 기다렸다 맞이하고이야기하고대화하라고그 시간을 즐기라고 가르쳐주셨어요실제로 문을 열어놓고 해도 노동자분들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거 어려워하세요저희가 나가면 질문도 하시고 사진도 같이 찍고누구는 저를 누나라고 하고선생님과장님 호칭도 다양해요그 시간이 저는 제일 좋아요일요일.

 

지금은 코로나로 일요일에도 만날 수 없지만참여자들로 북적였던 일요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그런 마음으로 참여자들의 일과 삶의 자리로 기꺼이 찾아가고눈높이를 맞추어 이주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일로 만들어 풀어온 그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요일에도 빠짐없이 함께 나와주시는 사장님’ 덕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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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민참여자가 보내온 편지와 물건들]


Q. 오늘 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회복지사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혹시 그러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나요?

    하하하그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아요제가 늘 말하는 건 한국어를 천천히세 번만 말하면 됩니다센터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비영어권 국가에서 오셨구요노동을 하러 오시는 분들은 한국어 시험을 보시고 오셔서 어느 정도 기초가 다 있으시거든요정말 천천히 세 번만 말하면 모든 소통이 가능하죠정말 본국어 상담이 필요한 경우는 통역 선생님들과 함께하니 문제없습니다.

 

Q. 한국말 천천히 세 번은 말 잘 안 통하는 한국 사람끼리도 필요한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마지막으로 앞으로 가지고 계신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잠깐 소개해주세요.

    이주민 복지 분야에서 일하면서 법이나 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많이 필요해요또 이것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일하면서 직접 부딪혀 배우고 적용해왔는데 이걸 넘어서 이주노동의 세계적인 흐름이라든지 이주민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공부해보고 싶어요제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다듬어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개인적인 꿈은 작은 책방을 운영해보는 것이에요이름도 미리 정해두었는데 지구인의 정류장이요안산에 있는 이주민지원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센터의 이름이기도 한데요이 이름으로 작은 책방을 만들어 지구인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구인’ 파트에는 이주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모아놓고 정류장’ 파트에는 쉼을 위한 책들을 마련하는 것이지요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저의 작은 꿈입니다.

 

Q. 이주민 복지분야를 좁은 길이라고 표현하셨어요그 길을 함께 뚜벅뚜벅 걷고계신 동료분들게 이 자리를 빌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늘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주민 복지현장의 우리에게 만남과 이별이 형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나라 중 한국을 선택하여 떠나온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잠시라도 새로운 세상의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이주민들에 대해 묻는 사람들을 만나며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현재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이주노동자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 역시 외국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필요하다며 코이카에 지원했고여름이면 휴가를 내어 본국에 귀환한 이들을 찾아가 만난다는 그녀의 진심그것이 한국을 방문했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미 따뜻하고 편안한 정류장이 아니었을까이주노동자와 함께 진심으로 걸어온 12그녀가 앞으로 이주민 복지 분야에서 새롭게 열어갈 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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